공간 속 맥락을 생각하는 미디어아티스트
미디어아티스트
이석준
2020.10.06


현대에 들어 예술의 개념은 이전의 그것과 사뭇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뒤샹은 '샘'이라는 작품을 통해 레디메이드된 공산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워홀은 켐벨 수프 캔을 캔버스에 옮겨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냈다. 이전의 시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예술은 작가가 부여한 개념에 의해 정의되는 것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미디어 아트 또한 변종의 성격을 지닌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예술의 범위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어떻게 형상화되고, 어떻게 관객들에게 읽힐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실험은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실험중이다. 이석준 작가 또한 그 한가운데에 있다. 



조소 전공자, 공간과 맥락을 생각하다. 



이석준 작가는 조소를 전공했다. 돌과 같은 물체를 조각하거나, 흙과 같은 물질을 빚어내거나, 모두 전통적인 미술의 한 장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흙을 만지고 입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작가의 삶을 생각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지만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놓여졌을 때, 전시장에 관람객이 들어왔을 때, 그리고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영할 때... 작품은 공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맥락을 잘 읽고 해석해야 온전한 전시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그의 이러한 갈증은 대학원으로, 또 유학으로 이어졌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히는 데에 이른다. 그렇게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었다. 


프로토 타이핑, 수많은 실험들, 미디어 아트 작품의 조건.



사실 미디어아트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작품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이석준 작가의 작업은 만화경을 연상하게 하는 회전하는 원판을 통해 변화하는 빛의 향연을 보여주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배가 끊임없이 노를 저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기도 하며, 나란히 선 형광등이 일정하게 움직이며 규칙적인 빛의 궤적을 그려내기도 한다. 특히 움직이는 작품, 즉 키네틱 아트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이석준 작가의 경우 필요한 기술이 많았다. 목공과 용접은 물론 PCB기판 제작, 센서 활용 능력, 프로그래밍 기술...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모였을 때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은 필수 조건이다. 작가의 작업실이 수많은 공구들과 기계들로 가득차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 꾸준히 걸을 뿐. 



이미 가정을 꾸린 그에게 작가로 사는 삶은 누구나 그렇듯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준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남대문이 한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불타버렸고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보수 공사 중 무너져 내렸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작가는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견뎌왔던 대상의 소멸을 보며 첫번째 슬픔을 느꼈고, 외양은 같지만 중심은 다른 복원된 대상의 이질감을 보며 두번째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의 기술로 만들어 냈다. 이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